[행사 스케치] 임순례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영화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 마스터클래스가 16일(수) 아트레온 5관에서 열렸다. 이번 마스터클래스의 주인공은 최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임순례 감독. 임순례 감독은 단편 <우중산책>으로 데뷔한 후 저예산 장편영화와 단편영화,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형식과 제작 시스템을 거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그의 영화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면서도 냉정한 현실 인식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를 연출하면서 느낀 점,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와 초점 등 그가 풀어놓는 솔직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관객들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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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갈증을 느껴 파리로 유학, 원없이 영화만 봤던 4년”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영화에 대해 공부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 대학 3학년 때 불란서 작가주의 영화를 접했다. 그 당시는 한국 영화 시장이 상업적으로 발달한 시기가 아니었다. 임권택 감독, 배창호 감독 등 소수의 감독들만 활동하고 있는 시기였다. 여성감독은 특히 드물었다. 여성감독의 시기로 따져보면 아마 암흑기가 아니였나 싶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느낀 순간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 당시엔 주로 한 감독님 밑에 들어가서 오랜 기간 동안 연출부 생활을 하다가 데뷔하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한 감독님 밑에 들어간다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 때 한국의 영화학은 막 정착된 상태인만큼 깊은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텍스트 없이 공부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결국엔 영화에 대한 갈증으로 예술 영화를 공부하기에 가장 좋다는 파리로 갔고 4년간 원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제에서 줄줄이 매진되던 작품들이 개봉만 하면 참패”
여균동 감독의 연출부에서 일하다가 94년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중산책>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장편영화인 <세친구> 시나리오를 썼다. 내용이 상업적이지 못해서 투자자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서울단편영화제 측에 찾아가서 도움을 부탁하는 등 나는 PD겸 감독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 당시 4억 3천만원의 제작비를 받았다. 보통은 제작비가 모자라기 마련인데 딱 200만원이 남아서 마지막으로 MT가서 다 썼다. 나는 프로듀서의 기질이 좀 있는 것 같다.(웃음)
<세친구>가 1회 부산영화제에서 3회 상영했는데 모두 매진됐다. 이 결과에 기대를 걸고 극장에서 상영했는데 3만명 겨우 넘었다. 2001년도에 완성한 <와이키키 브라더스> 역시 전주, 부산영화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상영했더니 전국 관객 10만명 정도로 역시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작품성 있는 작품들이 극장에서 빨리 내려서 ‘와라나고’라는 이름으로 ‘예술영화 살리기 관객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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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혹사시키는데 있어서는 마음이 약한 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첫 촬영 장면이 옷을 다 벗고 해변가에서 뛰는 장면이었다. 크랭크인 들어가고 첫 촬영 시작했을 때가 10월이었다. 첫 촬영부터 옷을 벗기고 뛰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행히 배우들이 잘 따라줘서 3번 안에 O.K했다. 영화를 찍다 보면 배우를 어디까지 혹사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다. 난 사실 마음이 약한 편이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다. 배우들이 감기 들거나 하면 “애 하나 감기 걸리게 해서 뭐 얼마나 달라질까”싶어 그냥 O.K한다. 근데 프로듀서들을 보면 12월에 물에 들어가는 장면도 10번 이상 시키더라.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저런 건 배워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좀 더 시킬 걸’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는 너무 심하게 혹사시켜서 불평도 많았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엔딩 장면은 고속도로에 트럭이 지나가며 오지혜가 “여수 아직 멀었어?”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스텝들이 보면서 임팩트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던 장면이 오지혜씨의 노래 장면이다. 아마 오지혜씨의 노래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엔딩 장면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장안동에 있는 가라오케를 빌렸는데 주인들과 5시까지 촬영을 마치기로 한 상태였다. 그러나 보통 영화 찍는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없는 편이라 나 역시 한 6시까지는 찍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좀 늦어지니 속칭 ‘깍두기 아저씨’들 표정이 변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제작부는 나에게 얼른 찍으라며 독촉했다. 엔딩 장면이라 중요했음에도 급하게 끝낼 수밖에 없었다. 원래 그 장면에서는 비루한 삶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뉘앙스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하더라. 이유를 물어보니 이얼 이라는 배우의 표정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빨리 끝내야 하는 사정 때문에 디테일하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단 3만 명이 보더라도 2만 5천명이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우.생.순.>이 큰 사랑을 받아서 매우 행복했다.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좌석이 꽉  차 있는 것을 보며 뿌듯했다. 코믹한 장면이 많아서 찍는 과정에서도 행복했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대중성’은 아니다. 100만 명이 영화를 보고 99만 명이 극장 문을 나가는 순간 잊어버리는 영화보다는 3만 명이 보더라도 2만 5000명이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우.생.순.>을 만들면서 많은 관객들이 보면서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의미와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영화의 기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갖추기가 쉽지만은 않다. 내가 하려는 것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중 영화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현실을 버틸 땐 초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한국 영화산업은 점점 축소되고 있고 갈수록 힘들어진다. 여감독이 되는 것도, 여배우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 내가 지녔던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면 주변 상황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나의 초심은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 난 그 초심을 아직 가지고 있고, 내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설사 흥행에서 참패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어려운 순간마다 초심을 돌이켜본다면 어려운 현실을 버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웹데일리 자원활동가 김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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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의 대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3일째로 접어들던 4월 12일 오후 1시 아트레온 5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임순례 감독과 관객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중에는 영화를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본다는 관객들이 많아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08년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의 선발주자로 나섰던 우생순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관객들은 영화의 세심한 부분까지 진지하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임순례 감독은 특유의 소박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관객들의 질문에 답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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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감독과의 대화’의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영화에 비오는 장면이 나온다. 특별히 넣은 이유가 있는지?
-비가 오면 더 처절하지 않나.(웃음) 예전부터 비가 오는 장면을 꽤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감정이 더 살아나고 그 장면의 느낌을 더 잘 드러내 준다고나 할까.


영화에서 선수들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은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그렇게 한 이유라도 있나?

-표면적으로 딱 이것이다 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식당에서 다른 팀 선수들과 격돌하는 장면이나 남자 고등학생들과의 경기, 남자 감독의 등장 같은 요소들이 그런 화합의 과정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도 실제 시합처럼 은메달을 따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금메달로 하면은?(관객과 감독 모두 웃음) 왜 은메달을 따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나?

-되게 아쉬우셨나보다(웃음). 원래 영화의 기획의도가 금메달 혹은 은메달보다 값진 투혼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고, 금메달을 따는 것은 그런 의도와 맞지 않는 것이라 그렇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디사이저 소리가 들리는 음악이 특이하다. 왜 그런 음악을 선택했나?
-은메달을 따는 것, 혹은 경기에서 패한 것이 패배라거나 절망이라거나 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엔딩에 단체사진 뒤에 선수들의 웃고 있는 느낌의 사진도 나오는데 이 또한 그런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은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지 잘 모르겠는데 엔딩 음악 들어보면 코러스가 들린다. 합창이 주는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고, 전체적으로 톤을 밝게 가져가자는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 관객의 질문) 당신은 조용하고 유머러스해 보인다. 이는 스포츠 영화와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영화를 하게 되었나? 당신의 영화취향과 이 영화를 한 이후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알고 싶다.

-저 조용하지 않아요.(웃음) 스포츠를 하는 것은 안 좋아해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긴다. 학교 빼먹고 야구장 간 적도 많고 올림픽도 꼬박꼬박 챙겨봤다. 우생순을 하면서는 경기 테이프를 보면서 핸드볼 공부를 많이 해 나중에는 내가 핸드볼 감독인지 영화감독인지 잘 모르겠더라. 변화라고 한다면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할 때는 소수 관객들이 좋아해줬고 이번 영화는 보다 많은, 대중이 사랑해준 영화였다.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의미를 발견했고 나 자신도 그런 영화에 대해 좀 호의적이 된 것 같다.


2004년 핸드볼 경기를 실제로 보았다. 우리나라에 다른 스포츠 소수자도 많은데 굳이 핸드볼을 선택한 이유는?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 다하는 것이 우리 한국인들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올림픽 핸드볼 경기는 그 자체가 그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대한 오마주랄까.                            




       웹데일리 자원활동가 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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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용산 CGV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작 보고회를 마치고 나오신 임순례 감독님을 시작으로, 신사동 모처에서 변영주 감독님, 그리고 동교동 모처에서 배우 추상미님을 만났습니다. 앞서 촬영에 응해주셨던 정재은 감독님, 김은실 교수님만큼이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세 분을 만나고 많은 관객분들께 이 메세지를 전해드리게 되어 정말 뿌듯합니다. : )

동영상 많이 퍼가시고, 얼마남지 않은 커튼콜 이벤트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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